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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슙민] 루시드 드림 : 02

자각몽을 꾸는 지민과, 꿈에서 만난 첫 사람 윤기.


 루시드 드림 : 02



 "내가 불러서 온거에요..?"

 "그럼 여기 너랑 나 말고 누가 있는데?"

 "말도 안돼…"

 "돼. 그러니까 내가 여기 있지. 그리고 너도."



 대수롭지 않다는듯 말하는 남자에 지민이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할 말을 잃은것일까.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해보이는 남자 앞에서 이 상황을 여러번 겪고도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지민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없으니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다 지민의 발자국 대로 죽어버린 풀을 발견하곤 그 옆에 앉아버린다.



 "근데 너 많이 힘드냐. 이런건 나도 처음보는데."



 처음? 그렇다면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을 많이 만나봤다는 말일까. 손에 쥐고있던 열매를 죽어버린 잡초위에 부벼대는 남자에 지민이 남자를 부르려다 멈췄다. 마치 영화처럼 반짝이는 파편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열매는 죽어버린 풀에 새겨져 새로운 열매를 맺었다. 정말 모든게 꿈이구나. 살아있는듯한 이 남자도, 당장이라도 이슬이 떨어질 것 같은 이 풀들도. 다.



 "아직도 이런게 신기해?"

 "처음이라는 말, 무슨 뜻이에요?"

 "대답은 누가 하냐."

 "해줘요."

 "직접 온 건 처음인데,"



 말을 하다가 끊어버리는 남자에 지민의 표정이 구겨졌다. 뭐 특별한 말은 아니였다는듯 넘기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시 물어본다고 해서 대답을 해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지민도 말을 넘겼다.



 "매일 올 수 있어요?"

 "부르면."

 "나한테만 와요."

 "생각해보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민에도 예쁘게도 웃는게 정말 꿈 사람이구나 싶었다. 저 새하얀 피부도, 올라가는 입꼬리도 다 꿈이라는게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인게 더 믿기지 않을것 같았다. 자연스럽게도 누워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남자가 이내 작게 투정을 부린다. 더 예쁘게 해달라고. 너무 음침하다고. 그래도 처음 온 곳인데 이건 너무하지 않냐며 툴툴대는 남자에 표정을 굳혔던 지민도 다시 웃음을 지었다. 더 예쁜곳이라,


 눈을 살짝 감고는 푸른 언덕을 생각했다. 나비도 날아다니는 꽃이 핀 언덕. 지민의 까만 시야를 채워가는 푸른잎들이 흔들렸다. 눈을 뜨니 그대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들판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또 눈이 동그래졌다. 신기해.



 "풀 좋아하냐."



 남자의 말에 잠시 무슨 뜻일까 고민해보다 얼굴이 빨개졌다.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실내였어도 됐을껄.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런데를 또 언제 올 수 있을까 싶어 나쁘지는 않다고 결론지었다.



 "그런가봐요."

 "그러게."



 살풋 웃어보이는 지민에 남자도 덩달아 웃어보인다. 남자의 손짓 한 번으로 노란 나비가 손 끝에 앉고, 남자의 입김 한 번에 노란 나비가 날개짓으로 노란 바람을 내며 흰 나비로 변했다. 처음엔 마술과 비슷한 느낌 이였다면 이젠 신비한 소설책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어떤것으로도 설명 할 수 없는 모든 것. 무엇을 하던 놀라는 지민에 남자는 살짝 신나 보였다. 괴기한 풀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그 풀 인형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게도 만드는걸 보면 아마도.



 "있잖아요,"

 "민윤기."

 "…네?"

 "내 이름. 넌 박지민이고.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어떻게… 알았어요?"

 "여긴 다 할 수 있다니까."



 깜짝 놀라는 표정은 여러번 봤는데 이게 제일 놀라운건지 이번엔 입까지 벌어진다. 사실 거짓말인데. 하면 하는대로 반응이 오니까 재미있어서 자꾸 놀리게 됐다.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닌데.



 "그럼 난 어디까지 가능한건데요?"

 "그게 뭐든 다."

 "형도요?"

 "그건 빼고."



 처음부터 막혀버린 말에 지민의 기대감이 폭 줄어들었다. 다 된다면서.



 "나빼고, 다."

 "형은 왜 안돼요?"

 "난 네 꿈이 아니니까."



 내 꿈이 아니다. 꿈 속에 있는데도 꿈은 아니다. 이해할수 있는 말은 아니였지만 그냥 끄덕였다. 물어본다고 해서 알려줄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형 말고 다른 사람도 나와요?"

 "너한테 배정된 사람이 나 뿐이라. 뭐, 다른거 보고 싶으면 이런건 할 수 있는데."



 윤기의 손이 지민의 눈을 닫았다. 닫힌 시야로 기대감이 가득 들어찬다. 다른 사람이라니. 사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기대가 안될수 없었다. 형 말고 다른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눈, 떠."

 "뭐, 뭐야. 뭐에요! 놀랐잖아!"

 "왜. 너 얘 좋아하잖아."



 얼마 전까지 꽤 좋아했던 아이돌의 얼굴로 들이대는 형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가슴을 부여잡고 놀라는 지민이 그렇게 웃긴지 크게 입을 벌리며 웃어보이는 윤기에 지민의 얼굴이 빨개졌다.



 "할 거면 목소리 좀 어떻게 해주던가… 빨리 치워요."

 "왜, 좋아했잖아. 뽀뽀해줄까?"



 얼굴을 한껏 들이대는 윤기에 지민이 귀를 꼭 닫아버렸다. 눈도 꼭 감고. 진짜 못됐다.



 "빨리 바꿔요. 진짜 소름돋는다구요."

 "아쉽네."



 눈을 뜨니 다시 형의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소리치느라 목도 아프고 열도 오르고. 손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바람이 분다. 맞다, 이거 할 수 있었지.



 "너 귀 빨개."

 "아, 형, 진짜."



 얼마나 크게 질렀는지 갈라지는 목소리에 지민이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이제 안놀리겠다며 큭큭대는 윤기 앞으로 커피가 하나 놓여졌다. 자연스럽게 마시는 윤기를 보는 지민의 손에도 커피가 들려졌다. 바닥에는 여러 과자들이 늘여져있었다.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아. 세팅된 바닥과 지민의 손에 들린 커피를 보더니 누워서 커피잔을 가지고 장난치던 윤기가 일어났다. 커피를 입에 가져다대려고 하니 급히 손을 뻗어 제지하고 빼앗아버린다.



 "응?"

 "먹지 마."

 "왜요?"

 "탈 나."



 뜬금없는 윤기의 말을 곱씹던 지민이 아, 하고 탄식했다. 꿈에서 뭘 먹으면 탈난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인가. 하지만 아무리 꿈이라도 움직이고 말하는게 실제와 같아서 갈증을 버티기는 힘들었다. 당장 마실게 눈 앞에 있으니 더.



 "괜찮아요."

 "그럼 과자는 먹지 마."

 "다 된다면서 안되는거 진짜 많네요."

 "먹지 마."

 "치, 알았어요."



 손짓 한 번으로 과자를 다람쥐로 바꿔버리는 윤기에 지민의 입이 삐죽 나왔다. 그래도 그냥 두지. 지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람쥐는 귀엽게도 풀들 사이를 뛰어 다닌다. 자신이 마시던 커피도 그리 만들어버린 윤기가 잠시 하늘을 보다가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댔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고도 네 번째 원을 거의 끝까지 그리다 손을 떼버린다. 윤기의 손짓에 만들어진 금빛 원틀이 반짝거렸다. 마지막이 이어지지 못한 원은 은빛이였다.



 "시간 거의 다 됐어."

 "벌써요?"

 "여기랑 거기 시간이 같겠냐. 일어나 빨리."



 눈을 깜빡이자 형이 점점 흐릿해진다. 점점 멀어지는 형에 눈을 부릅 떠봐도 까만 물감을 칠하는것 마냥 모든게 어둠으로 덮어졌다. 어둠에서 금빛 원틀이 한 번 반짝였다. 내일 또 봐. 이제 그만 일어나. 몽롱한 정신에 형의 목소리와 익숙한 목소리가 겹쳐들어왔다.



 "아들, 일어나. 지각하겠어."



You got me daydreaming to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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