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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루시드 드림 : 00

자각몽을 꾸는 지민과, 꿈에서 만난 첫 사람 윤기.



루시드 드림 : 00



 어느순간부터 내 꿈은 흰 도화지 같았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꿈속에서 눈을 뜨면 항상 흰 침대위였고 주위를 둘러봐도 모든것이 하얀 공간이였다. 출구도 그 무엇도 없는 작은 방. 나는 그걸 하나의 방이라고 지칭했다. 사실 이게 방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평소 꿈을 잘 꾸지 않는터라 이 백색의 꿈이 이상한지도 인지하지 못한채 나는 그 작은 공간에서 걸었다. 제 앞을 막고있는 벽을 만지고 신기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출구도 없는 공간이라는게 처음에는 흥미로웠지만 그것도 잠깐이였지 그 공간은 꽤나 지루했다. 있는거라곤 네개의 벽과 두개의 침대뿐인 이 공간에서 더 이상의 흥미거리를 찾기란 어려웠으니. 아니, 어려운게 아니라 불가능 이라고 해야할까.

 아, 하나 덧붙일 말이 있는데 나는 이 공간이 모두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냥 당연히 현실일리가 없으니까. 출구없는 단색의 방에 갑자기 갇혀버린 상황이 꿈이 아닐리가 없으니까. 누구도 이 말을 쉽사리 이해하진 못했지만 난 그랬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공간 자체에도 흥미를 잃은 나는 하릴없이 침대에 곧게 누웠다. 뭐라도 상상할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상하리만큼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이 공간처럼 새하얘진 머리로 체감상 몇시간을 누워있었다. 머리가 하얘지니 이제 몸을 움직이는법 조차 까먹을것같은 느낌이였다. 한참을 흰 벽만 바라보다 흐릿해진 눈이 공간을 비틀어놓았다. 하얀 벽 위로 제 방 천장이 겹쳐지며 주위의 모든것이 현실속의 저와 겹쳐지게 만들었다. 눈을 깜빡임과 동시에 그 깨지 않을것 같던 꿈이 깨버렸다. 아, 깨어났다.

 분명 잠을 잔게 확실한데 몸이 피곤한건 기분탓이 아닐것이다. 무료함이라는 감정과 싸우는건 꽤나 피로한일이였을테니. 나는 처음에 이러한 꿈을 꾸는 이유가 피곤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머리에서 아무것도 조합할수 없을만큼 피로해져 그런 꿈을 꾸는 것이라 추측했다. 아마도 두번정도 더 그런꿈을 꾸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다는것을 느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반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매일 밤마다 그 공간에 갇혀있었다. 그러한 꿈을 꾸고나면 괜찮았던 기분까지 우울해져서 차라리 깨어있는게 덜 피곤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잠을 피하게 되었고 점점 초췌해지는 아들의 모습을 본 부모님은 나를 '불면증' 이라는 병명으로 병원에 데려가셨다.


 "애가 어쩐일인지 자꾸만 뒤척이고 잠을 못자더라구요."


 못자는게 아니라 안 자는건데.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게 뻔해서 잠자코 있었다.


 "잠을 잘 못자는구나. 부모님께서 잠시 나가계셔주셔야 편히 상담할수 있을것 같은데 자리 비켜주실수 있으실까요?"


 보통은 같이 상담하지 않나. 이상함을 느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누구도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괜히 내가 예민한것일까.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부모님을 뒤로 의사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마주쳐왔다.


 "왜, 잠을 피하게 됐어?"


 인사도 아니고 본론이라니. 게다가 정곡을 찔러버린 의사선생님의 첫마디에 나는 너무 놀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직 어떠한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는데 벌써 자신을 다 안다는듯한 표정과 확실하다는듯한 말투.


 "...꿈이 괴로워서요."


 그런 모든것들이 믿음직해서 그랬을까 의문을 품고는 있었지만 나오는건 질문보단 대답이 먼저였다. 나이가 많아보이지는 않았는데 꽤나 노련해보이는 분위기에 살짝 긴장하고있던 몸도 풀어졌다.


 "정확히 어떤식으로?"
 "꿈에서 눈을 뜨면 모든게 하얘요. 침대도 벽도 천장도. 거기에서 저는 갇혀있어요. 출구도 없는 작은 방에서."
 "움직여본적은 있니?"
 "네, 처음 눈을 떴을땐 벽도 만져보고 문도 찾아보고 했는데 눈에 보이는것 외에는 없었어요."


 잠깐의 침묵. 기록하던 손도 멈췄다. 내가 너무 자세하게 설명한것에 대한 놀람일까? 혹은 생각했던 증세가 아니라서일까? 펜을 내려두고 고개를 들어 정확히 눈을 마주본다.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나가고 싶다. 처음과 다른 그 끔찍한 공간에서의 탈출. 당연히 있었다는 말을 꺼내려했는데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 공간을 나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괴롭다고 느꼈으면서. 왜일까. 나 조차도 나를 이해할수 없음에 머리를 한대 맞은듯 했다.


 "다음에 꿈을 꿨을때는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봐. 그 꿈은 너의 공간이니까 너의 의지대로 모든걸 만들어낼수 있을거야. 어떠한 생명체들도, 너가 그토록 찾던 출구까지도. 어쩌면 너가 그 공간에서의 신이겠지."


 어디서 그렇게 확신을 얻었을까. 질문뿐이던 의사선생님의 대답은 곧았고 단단했다. 곧은 눈빛이 모든 신뢰감을 만들어낸듯 약간의 의문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말 그 말대로 이루어질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약간의 충격을 받은 내 앞으로 명함 한장이 내밀어졌다. 살풋 웃음과 함께.


 "김석진. 더 궁금한거 있으면 전화해. 찾아와도 되지만 없을지도… 아마도 전화쪽이 좋겠다."


 뒷 말의 뜻은 자신이 바쁠 상황을 대비한 말일까. 하루에도 수십명의 환자가 왔다갈텐데 그렇게 바쁜 사람이 굳이 나에게만 특별한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일까.


 "약은 따로 필요없겠지만 일단 부모님이 걱정하시니까 처방해줄게. 물론 단순한 비타민이니까 걱정은 말고."


 만난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인데 모든것을 이야기 해도 괜찮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믿음을 받고 주는일은 결코 쉽지 않은데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사람이라니. 명함을 꼭 쥐고 상담실을 나왔다. 김석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름을 몇번씩 되내이며. 닫히는 문 사이로 두개의 목소리가 겹쳐졌지만 돌아볼 틈이 없이 닫혀버렸다.


 "다음에 또 보자."
 "수요일에 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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